연민은 어떻게 삶을 고통에서 구하는가
: 이타심에서 참여까지, 선한 마음의 이면에 대한 연구
세계적 선승(禪僧), 미국 참여 불교의 대가,
조안 할리팩스의 역작
스트레스와 번아웃의 끝에서
고립과 단절로 자기를 방어하는 당신,
자유와 치유의 길은 연민에 있다
“오후 햇빛을 등지고 진료소로 돌아온 나는 죽어 가는 할머니 곁에 앉았다. 숨쉬기도 힘들어 하는 노인의 이마에 오른손을 올려놓았다. 다음에는 만성 폐쇄성 폐 질환을 앓고 있는 여성 곁에 앉았다. 그녀 역시 살날이 얼마 남지 않았다. 그렇게 진료소의 하루가 저물어 가며, 찰나의 해변에는 생사의 파도가 오가고 있었다.
마침내 밤이 오자 진료소는 문을 닫았고, 나는 게스트하우스 마당에 있는 나의 텐트로 돌아왔다. 나의 삶은 뭍 생명 곁에 있는 작은 배처럼 느껴졌다. 그 생명들은 배움을 주기 위해 우리 곁에 왔다. 히말라야의 어둠과 침묵 속에서 나는 잠이 들었다.”
- 본문 중에서
‘치유’는 요즘 사람들이 많이 검색하는 키워드 가운데 하나다. 각박한 인간관계, 살벌한 경쟁, 팍팍한 삶으로 인해 받은 상처를 치유하는 것은 이 시대의 지상 과제다. 치유를 위한 해결책으로 흔히 제시되는 것이 ‘이기적이 되라’다. 이것 저것 눈치 보며 타인을 배려할 것 없이 나부터 생각하라는 것이다. 하지만 인간은 필연적으로 타인과 함께 살아가는 존재다. ‘이기적이 되라’가 과연 진정한 치유의 길이 될 수 있을까? 타인의 존재에서 눈을 돌려 버리고 나면 우리는 충분히 행복할 수 있을까?
이 책의 저자인 조안 할리팩스(Joan Halifax)는 세계적인 선승이자 미국 참여 불교의 대가인 동시에 의료 인류학자다. 저자는 ‘이기적이 되라’와는 반대되는 것, 즉 타인에 대한 연민을 가질 것을 치유의 길로 제시한다. 저자는 연민에 기반하여 이타심을 발휘하고, 타인에게 공감하며, 도덕적 진정성을 갖고, 타인을 존중하며, 타인을 위해 뭔가를 하라고 주문한다. 때로 우리는 그러한 과정에서 고통을 경험할 수도 있다. 하지만 타인과의 깊은 유대를 인식하는 연민의 마음을 잃지 않는 한 우리는 고통에서 벗어날 수 있다. 연민을 통해 우리는 자유로워지고, 스트레스와 번아웃으로부터 스스로를 치유할 힘을 얻는다. 나아가 우리는 모든 존재와 사물이 상호 연결되어 있음을 보는 드넓은 관점, 그리고 삶과 죽음을 여실하게 바라볼 수 있는 통찰력을 얻게 된다.
이기적으로 사는 것이 자기 치유의 수단이 되는 시대에 조안 할리팩스의 권유는 이상적인 꿈 같기도 하고 동화 같기도 하다. 하지만 과연 그럴까? 저자의 생애는 타인을 향한 연민의 여정이었다. 그 여정은 인간의 마음에 대한 신경 과학적인 탐구이기도 했고, 죽어가는 이들의 삶과 사형수들의 삶과 고통에 시달리는 이들의 삶을 어루만지는 치열한 실천이기도 했다. 그 기나긴 여정을 통해 저자는 타인을 향한 연민이야말로 자기를 치유하고 나아가 이 세상을 치유하는 수단이 될 수 있음을 몸소 입증해 왔다.
그 여정에서 얻은 깊은 통찰과 생생한 경험을 응축하여 조안 할리팩스는 이 책을 썼다. 저자의 이야기를 통해 연민은 인간이 갖출 여러 덕목 가운데 하나에 머물지 않고 나와 세계를 위한 구원의 길로 재탄생한다. 연대와 우정과 사랑이 의심받는 시대. 관계는 고통스럽고 혼자가 편안한 시대. 나홀로족과 일코노미를 말하지만 그 이면에 있을 그림자에 대해서는 말하지 않는 시대. 이 시대에 드리운 고립과 단절의 깊은 어둠 속으로 이 책이 혜성과 같이 뛰어든다.